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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느낌을 끌어안아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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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8-05-05 15:49 조회1,4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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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느낌을 끌어안아라


오늘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의 관계, 무슨 이유에서든 당신들이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 사람들과의 관계.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당신 자신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연한 사건이나 우연의 일치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현실이든 집단적인 현실이든 모두 믿음의 체계에 근거한다는 것도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자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자신에 대해 믿고 있는 바를 정확히 자기 자신에게로 끌어들입니다.


잠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당신들 모두가 그토록 사무치게 바라는데도 사랑은 왜 그렇게도 달아나기를 잘 하는 걸까요? 당신들 자신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믿게 되면, 당신들은 자신들의 삶에 그것을 창조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 본래의 자기 자신과 진실로 사랑에 빠지게 되면, 자신이 신성의 표현이라는 걸 전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모든 관계는 정말로 사랑의 관계가 될 겁니다. 그렇지 않는 것은 당신 자신이 본래의 자아에 덧칠한 자아를 그대로 되비추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제한된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는, 처음에는 굉장한 사랑과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천진난만한 모습이 놀랍도록 애정과 자비를 불러 일으키지요. 아이가 자라, 자신의 뜻을 지닌 어른이 되면, 사회적 요구가 그 아이를 짓누르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어 주길 바라죠. 아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상관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이에게는 사랑의 결핍으로 느껴집니다.


부모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기게 되고, 부모와 진정한 대화가 없이 자라게 됨에 따라, 오해가 싹트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자라기 때문에 나중에도 자신의 사랑을 마음껏 펴지 못하고 스스로 제한을 두게 됩니다. 이성간의 사랑이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사랑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그 생각은, 우주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갑니다. 생각은 당신의 가장 강력한 도구 이상이고, 그 자체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가 내보낸 것을 자기에게로 다시 끌어들이는 이 에너지를 우리는 전자기적인 에너지라고 부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만약 당신이 사랑을 고통이라고 믿으면, 사랑의 관계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믿으면, 자신이 사랑 받을 가치가 없다고 진정으로 믿으면, 그땐 반드시 이런 것을 당신 자신 쪽으로 끌어들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상황인가가 나타나서 당신이 믿은 바를 반영해 주는 겁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거리가 있습니다. 조건 없이 샘솟는 순수한 사랑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겁니다. 그건 일종의 가르침입니다. 일종의 반영이지요. 왜냐 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는, 자기 자신의 모든 면을 다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알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은 모든 현실의 지평에 반영되고, 전 우주로 널리 퍼져나갑니다. 본래의 자기와 더불어 경이로운 사랑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겉사람과 속사람 사이의, 당신이 지금껏 자기라고 생각해 온 가짜의 자기와 진정한 자기 사이의 분리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도록 허용하는 가운데, 자아 안에 깃들어 있는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는 겁니다. 그러한 균형은 당신의 우주 전체로 반영되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이여, 당신이 무슨 책을 읽든, 무엇을 추구하든, 누구의 말을 듣든, 어떤 대단한 선생이나 구루를 추종하든, 항상, 항상, 항상 그것은 당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인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항상 ‘저쪽 세계’에 대단한 호기심을 보입니다. 그렇죠? 관심의 대상은 다른 세계의 존재일 수도 있고, 다른 별에 사는 존재들일 수도 있고, 당신네 지구 내부의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인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위대한 기술을 지닌 존재들일 수도 있습니다. 항상 말씀드렸듯이, 당신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 때까지는, 지금 이 시점의 인간 의식을 초월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벗들이여,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들 어깨 위에 놓인 책임이 무겁습니다. 왜냐 하면 여러분 각자가 위대한 이해의 경지에 도달하는 넓이와 깊이만큼, 전 인류의 위대한 앎에 이바지할 수 있는 넓이와 깊이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백 마리째 원숭이 증후군 -


인류의 지식은 이른바 집단 공명이라 불리는 것 안에 존재하며, 집단 의식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공통된 울림은 일정한 에너지 수준에 이르면, 다시 말해 앎의 진동수가 일정한 수준이 되면, 엄청난 도약이 일어나게 되고, 그래서 인류의 의식 전체가 그러한 앎을 향해 뛰어오르게 됩니다. 깨달은 사람의 숫자가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그런 현상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단순한 숫자를 넘어서서 더 많은 진동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참고 : 일본의 어느 무인도에서 서식하고 있던 원숭이들이 흙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은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원숭이들에게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 수가 일정량에 달하면 그 행동은 그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리나 공간을 넘어서서 확산되어 가는 이런 현상을 미국의 과학자 라이얼 왓슨이 ‘백 마리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이름지었다.)


이러한 도약은 지적 이해에 의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는 지성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적 이해는 여러분 각자의 가슴속에서 영적이 이해가 앞서지 않는 한 결코 생길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지금껏 여러분이 알아 온 것들은 모두 균형이 잡혀 있지 않는 것들입니다. 지금 당신네 문화 속에서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은, 감정과 느낌이 될수록 배제된 지성입니다. 하지만 당신이란 존재는 느낌에 의해 힘을 얻는 진동 주파수라는 걸 아십시오. 당신이라는 존재는 느낌에 의해 힘을 얻는, 신의 생각 자체입니다.


오늘날의 당신네 문화에선 느낌, 감정, 상상력 같은 것을 경멸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당신의 상상력은 당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위대한 도구입니다. 가장 위대한 창조의 힘입니다. 당신이란 존재가 본래 창조적이지요. 당신의 물리적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자, 모든 분자가 창조적이고 무한한 힘을 지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여기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상상력은 당신을 시간과 공간 너머로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느낌 또한 당신을 시간과 공간 너머로 데려갑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성적 에너지를 느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대줍니다. 받아들이고, 느끼고, 직관적이 되게 합니다. 직관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 난 그러그러한 일을 하고 싶어. 그냥 느낌이 그래.”

여자들이 그렇게 말하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비웃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코방귀 귀어 마땅할’ 일이고, 논리적이지 않으며, 지성적이지도 못하고, 말도 안 된다는 거죠. 그것이 여자들의 특성이기도 하구요. 그렇죠? 하지만 이런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우린 매우 기쁩니다.


인류는 직감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점점 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직감을 따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직감은 아주 순식간에만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일상사를 쫓는라 바쁘기만 한데, 여러 가지 결정해야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어느 짧은 순간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안 돼’라는 말일 수도 있고, ‘맞아, 이걸 해’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 바쁘고 조화된 상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소위 직감이라는 것은 여서 에너지입니다. 당신들 모두는 내면의 속삭임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직감과 만나기 위해서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자신의 몸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과 흡사합니다. 몸에 어떤 불편이 오는 것은, 당신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인류는 느낌을 두려워합니다. 인류는 고통이라 불리는 것에, 번뇌라 불리는 것에, 절망이라 불리는 것에 꽁공 묶여 있습니다. 탄생의 순간부터, 최초로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고뇌를 경험한 순간부터, 당신들은 각자 자기 주변에 불가항력이라는 장벽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당신들 모두는 또 다시 상처받을까 봐 두려운 겁니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실망과 슬픔과 고통을, 당신들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거기에 단련된 당신들은 그 때문에 고통을 느낌과 혼동합니다. 하지만 고통은 느낌이 아닙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느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항입니다. 이걸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고통은 느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항입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삶에 즐거운 상황이 일어나면 ‘뱃속에 있는 느낌의 중심부가’가 열립니다. 크게 웃을 때는 복부가 흔들리지 않습니까? 상황이 아주 즐겁다고 느끼거나 크게 웃을 때면, 몸 안의 에너지 센터가 열립니다. 느낌은 에너지이고, 그것이 전부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모두 다 에너지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즐겁다고 판단한 상황이 나타나면, 몸 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 센터가 열립니다. 그리하여 복부에서 시작된 기쁨은 아무런 저항 없이 당신의 열린 에너지 센터를 통해 전신을 여행하고, 당신의 가슴은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 같은 기쁨의 순간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살게 되고, 당신 몸 안의 모든 원자와 분자는 그 같은 기쁨에 공명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즐거운 사람들은 몸에 병이 없습니다.


당신이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상황이 나타나 두려움과 전율을 느끼게 되면, 그땐 복부의 에너지 센터가 닫힙니다. 여러분 각자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런 상황이 일어나서 충격과 고통 속에 있게 되면, 그건 바로 복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따금씩은 ‘마치 걷어차인 듯 배가 아픈’ 느낌을 경험하게 되지요? 판단이란 복부에 꽃힌 날카로운 쇠발톱과 같아서 에너지는 더 이상 갈 길을 잃고 맙니다. 그것이 소위 고통이 되는 겁니다.


무엇이 고통을 창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판단입니다. 고통을 일으키는 다른 원인은 없습니다. 고통이라 불리는 저항을 창조하는 건 바로 판단입니다. 고통은 누적됩니다. 수억겁을 통해, 수많은 생애를 통해, 당신은 그것을 습득해 왔습니다. 당신들모두 그것에 매우 익숙해 있습니다.


당신들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어린 시절의 언제인가 당신은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대단한’어떤 일일 필요도 없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에선가 당신은 ‘돼먹지 못한 것’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슴속에선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 소리는 너무 작습니다. ‘너는 아름답지 않다’는 소리, ‘너는 어리석다’는 소리가 가슴속의 속삭임보다 압도적으로 큽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충분치 않은 존재로 판단하게 되고, 자신을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게 되면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장함에 따라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되지만, 다룰 줄 안다는 게 무엇을 뜻합니까? 당신 주변에 불가항력이라는 벽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을 태세를 갖추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상처를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더 높고 더 두터운 벽을 쌓게 됩니다. 당신이 성인이 될 무렵에는 그 벽이 매우 높고 두터워져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당신은 감추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게 됩니다. 마음을 보여주었다간 상처받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고통받을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지만. 고통은 다시 반복하여 나타나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 더, 더 당신은 자기 자신을 판단하게 되고, 다른 인간에 대해서도 더, 더, 더 판단하게됩니다.


‘나는 정부의 희생양’이라는, ‘타인들에게 번번이 당하기만 한다’는 관념에 갇히게 되고, 그것은 두려움이 커질수록 더 심해집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정확히 되비추어 줄 상황과 사람들을 더, 더, 더 자기 자신에게도 끌어당기게 되는 겁니다. 자, 이제 그것이 어째서 돌고 도는 원이 되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당신들 모두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나는 두렵다’, ‘나는 상처받고 있다’고 말하길 두려워합니다. ‘나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실은 절망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길 두려워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당신들은 입 밖에 낼 수 없는 가슴속의 상처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절망을 바라보길 두려워하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길 두려워합니다.


당신들은 자신이 충분치 않음을 두려워하고 있지만, 감히 그렇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답을 알고 잇는데 자기만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의 마음 은밀한 한켠에서는 자기만 못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만의 은밀한 생각들과 가지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행위들, 자신의 삶 구석구석을 돌이켜보고는 잣니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단정해 버리고, 자신은 결코‘저기 저곳’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의 살아가는 행태가 이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당신들은 모두 완전함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자기 자신이 본래 신성의 표현임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당신의 본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신들은 만유의 생각 자체, 근원의 생각 자체라고 말해주면, 당신들은 즉시 ‘만유’라는 것을 인격화시켜 생각해 버립니다. 우리가 신/여신이라고 말하면, 당신들은 즉시 인격화된 신이 존재한다고 상상합니다. 그것은 제1원인의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겁니다. 제1원인은 진실로 인격화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유’라고 하는 것이 결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님을 진실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당신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속에서 ‘만유’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성의 은줄은 모든 원자와 분자 속에, 모든 우주 속에 깃들여 있습니다. 그 힘이 만물 가운데 깃들여 있으니 만물을 바라보면 진정으로 알게 될 겁니다. 모든 풀잎, 모든 새와 꽃, 나무와 생물, 모든 바위, 심지어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 여겼던 것까지, 그 모든 것이 진실로는 ‘만유’자체임을.


당신 바깥의 이러한 반영물을 이해하게 되면, 그땐 그것, 아니 진실로는 이것 역시 바로 당신 자신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때로는 당신 바깥에 보이는 그림에 사로잡히기가 훨씬 쉽지요. 당신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에 대한 그림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당신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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